본문 바로가기

흥미위주 끄적거림/주장하는 글

한국은 자유를 나태로 비하한다



내가 받았던 자유에 대한 사회의 탄압과 비슷한 사례가 있어 일단 링크 투척.

http://www.goham20.com/49435 ㅡ '고졸'인 내가 입학을 기다리는 이유 by 통감자




  시작은 링크 속에 칼럼에서 인용하면서 해보겠다.

"명문대 교수, 미국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TV에 나와 힐링을 얘기하고 학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고졸로 사는 것이 대학 가는 것보다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삶에 대하여 돈 받고 쉽게 얘기하는 것을 보니, 대학이라는 것이 가진 위세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한 것 같다."

  '통감자'라는 필명을 쓰는 이 칼럼니스트는 학력위주의 사회 속에서 고졸로 살았다. 덕분에 남들과 다르게 비정상으로 치부되는 아주 특별한 삶을 겪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고졸로 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져 왔고, 덕분에 이 사회에 아주 당연한 악습을 적은 링크 속 칼럼이 참신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으례 남의 눈 의식하느라 용기가 없어 감히 하지 못 하는 일들을 누군가 하고 있으면 나태로 비하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공교육을 신뢰하지 않아 홈스쿨링하며 검정고시 준비하는 사람도 있고,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취직하기 보다는 적성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고 공부에 매진하는 사람도 있고, '9 to 5'의 규격화된 일상(한국에선 그나마도 찾기 힘들지만)과는 무관하게 프리렌서로 생활하는 사람도 있고, 예능에서 자신의 적성을 찾아 매진하는 사람도 있고, 수도승처럼 무소유의 원칙을 지키며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덕분에 집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도 있고, 분명히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는데 힘에 부쳐 간편하게 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 모두는 타인에게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다.

  나도 한때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강요받았다. 그리고 근면한 삶이란 것이 훌륭한 삶으로 믿어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노력도 안해보고서 나라탓만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 고생한다." "독립심과 책임감을 가져라" 이런 격언들이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진리인 줄 알았다. 세상이 어떻든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모처럼 누워있으면 불안했고 또한 죄스러웠다. 최저시급을 좌우로 하는 봉급을 받으면서도 틈나는대로 과제와 자격증 공부를 했다. 사는 것이 처랑해 밴드활동을 했지만 역시 불안했고 죄스러웠으며 몸까지 힘들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살다간 비누처럼 닳아 없어져버리겠다는 생각에 여행을 떠났지만, 배운 것보다는 써버린 돈이 많았다. 한학기 내내 알바를 뛰고 방학내 일주일 정도 여행을 가려하면 성수기라 그런지 벌었던 돈은 금방 없어져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나를 평가하는 누구도 나를 근면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인간의 습성상 대화 속에서 문장의 길이와 절대적 시간의 길이를 동치(同置)에 놓기 마련이기에, 나는 사람들에게 조금 일해서 아주 많~~이 놀러 다니는 아이였다. 걔 중에는 나를 약간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기하는 사람과 경험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눈초리가 보이면 나는 나를 더욱 과대포장 하였다. 사실과는 다르게 여행 속에서 얻는 감명을 부풀렸다. 그렇게 부불려진 감성을 가진 사람들은 드물었기 때문에 분위기는 이내 머슥해지고, 나는 씁쓸한 우월감에 중독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나처럼 만들어진 나 속에 살고 있는 사람. 상대적 박탈감에 모임을 꺼리는 사람. 어떻게든 남을 깎아내려 간신히 자존감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다. 이제 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모두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졸업(고등학교든 대학교든)과 동시에 자의든 타의든 40%는 놀게 된다는 것이다. 5명중 2명은 놀고 있는 상황에서, 즉 나태할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는 이제 근면한 삶에 대한 경계를 확장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존재한다면)여러분에게 양심에 손을 언고 뭍고 싶다. "자신의 나태보다 타인의 나태에 가혹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