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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위주 끄적거림/주장하는 글

한국인은 왜 윈도우밖에 못 쓸까?

1. 나는 리눅스 쓴다

리눅스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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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linux.org (.com .co.kr에 혼동해선 상업적 리눅스를 만나게 된다)

리눅스는 (위키식으로 말해서) IT 현장에서 선봉에 서는 자본주의 파괴자이자 복돌이들의 정신적 기반이다.

MS DOS UNIX 사이의 공방이 치열할 때 즈음에,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가 재미로 만든(?) 운영체제(OS)이다. 정확히는 리누스가 만든 리눅스 커널(kernel)을 의미하지만, (커널은 OS에서 핵심적인 프로그램), 리눅스 커널을 사용한 OS를 통상적으로 리눅스라고 부른다. 리누스 토발즈가 처음 커널을 구상하기 전에, 이미 미닉스(MINIX)가 유닉스(UNIX) 커널 기반으로 존재 했지만 교육용 소프트웨어 이상의 발전이 없었다. 리누스는 멈추지 않고 지금의 성과를 이루었다. 단지 재미로.

2. 리눅스 왜 쓰냐?

리차드 스톨만의 생각이 좋아서 ㅡ

초기의 소프트웨어는 모두 오픈소스였다. 유료로 소프트웨어를 파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소스 코드를 자유롭게 열람하여 복제와 수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물론 당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컴퓨터 언어 능통자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프로그래밍 그 자체가 놀이였기 때문이다. 가위바위보 할 때 마다 과금할 수는 없잖은가.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런 놀이문화를 사기업의 성과로 바꾸어가면서 자본을 축적하였다. (그 때부터인가 놀이터를 크게 지어놓고는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게) 50년대부터 시작한 플레시몹(집단 프로그래밍 놀이)이 돈이 된다는 것을 모든 프로프로그래 알게 될 때 쯤인 80년대, 스톨만은 소프트웨어를 독점하기보다는 과거처럼 컴퓨터를 함께 가지고 놀기를 희망한다. 1984년 고소득의 취업이 보장된 MIT를 떠나 GNU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이듬해 자유소프트웨어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을 설립한다. 이런 학력위주의 사회를 가볍게 비웃어 주는 혁명가. 너무 섹시하지 않은가?

리누스 토발즈의 생각이 좋아서 ㅡ

GNU 프로젝트가 개발한 제작 소프트웨어인 GNU shell에 감동을 받은 리누스는 재미로 만든 운영체제를 공개했다. 물론 GNU 정신 같은 거창한 이유보다는 스스로 괴짜라고 여기는 자기자신(처음 리눅스의 이름은 '프릭스'였다)의 입신양명이 이유였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가  운영체제 소스 코드 공개의 시작이다. 운영체제를 공개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리눅스개발토론그룹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리눅스를 보고 극찬하는 글과 자신의 프로그램인 것처럼 세세한 버그리포팅에 리누스는 감동하여 운영체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고, 이내 유닉스를 완전히 호환하면서 급물살을 타 대부분의 사람이 쓰게 되었다.
자서전에 따르면 리누스는 리눅스 성공의 상당 부분이 자신의 '성격적 결함' 덕이라 칭한다. 게으른 데다가, 다른 사람들의 성과에 편승하여 치하 받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성격이 그렇지 않았더라면, 오픈소스를 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몇몇의 믿음직한 사람들과 메일을 주고받는 형태에 그쳤을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리누스는 운영체제에 탑재할 소프트웨어 조차 본인이 선택하지 않고 대중에게 맡기었다. (어찌보면 대중을 너무 이용한다 싶은데) 다른 프로그램 보다 잘 활성화되어있는 프로그램을 채택하면 그 뿐이었다. 프로그램들은 각자 도태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채택되기도 하고 분화되기도 하고 독자적으로 다른 길을 걷기도 했다

리누스는 운영체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당시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동조해줄지 결코 몰랐다고 한다. 물론 대중이 모두 오픈소스에 긍정적인 것은 아니기에, 오픈소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이들은 주로 힘 쎈 사람들이다)도 존재한다. 리눅스로 파생되는 온갖 대중의 노이즈의 존재 자체를 리누스 본인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리누스에게 운영체제 개발은 어느 하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리눅스는 그에게 그냥 재미였다. (리누스 자서전의 제목 'Just for Fun')

공짜라서 ㅡ

리눅스는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컴퓨터 하드웨어만 가지고도 컴퓨터를 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단 부팅을 하면 얼마나 많은 무료 프로그램이 세상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경이로움도 느끼게 되고, 심지어는 그것들을 아주 쉽게 설치 할 수 있는다는 것에서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얼마나 세세한 것까지 그동안 내가 돈을 지불하지 않고 살고 있었는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중국집에서 세트A를 시킬땐 군만두가 당연히 서비스인줄 알았다가, 야생에서 야생 밀을 발견했을 때 느낌이랄까.

리눅스 운영체제는 통째로 인터넷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리눅스 ISO 파일을 받을 때면 세트메뉴를 무료로 받아보는 기분까지 든다. (나만 든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실재로 ISO 파일만 있으면 컴퓨터를 몇번이고 고장내도 싹 밀어버리고 다시깔면 고만이다. 리눅스는 어디까지 싹 밀어버릴 수 있는가에도 차별성이 있다. 내가 이토록 유용한 것을 쓰는데 있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무료로 받는 데도 죄책감이 없다니. 어쩌면 기독교의 원죄마냥 존재하지 않는 죄를 입고 살아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디렉토리가 윈도우에서 안보인다 ㅡ (이 점은 이용님께 심히 감사하다.)

윈도우에서는 리눅스 파티션인 ext4가 안 보인다. 하지만 리눅스 기반 OS에서는 윈도우 파티션인 ntfs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파티션이 보인다. 시스템 파티션에 대한 권한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렇다. 그래서 시작했다.

3. 리눅스의 치명적인 단점

한글이 잘 안된다.

한국인들은 리눅스를 PC운영체제로 잘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작업이 컴퓨터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놓고 보았을 때, 리눅스 운영체제의 미비한 점유율은 의외이다. 세계에서 리눅스 PC 사용자는 Javascript 추산 20%에 육박하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지는 모르겠지만 리눅스 정신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리눅스 커뮤니티 활성화가 한국은 잘 안되고 있는 상태이다. 어떤 커뮤니티는 공식홈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개 정도의 글이 포스팅 되는가 하면, 포스팅되는 글들이 전부 질문글인데 반해 답은 하는 사람만 한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질문이 "리눅스에서 한글이 안되요"이다. 진짜 한글이 잘 안되긴 한다. 일단 리눅스용 한글 폰트도 별로 없다. 한글폰트 대부분이 유로폰트이기 때문이다. MS ㄲㅅㄲ.

텍스트 기반(CLI, Command Line Interface)

윈도우에 익숙한 사람들은 GUI(Graphic User Interface)에 익숙하다. GUI는 마우스로 명령을 실행하는 것에 반해 CLI는 글자를 입력하여 명령을 실행하는 식이다. 사실 '어느 것이 더 복잡한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커뮤니티에서 한창이다. GUI로 간단하게 마우스 클릭으로 해결되는 일이 CLI는 굳이 명령어를 외워야 하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고, CLI로 글 한줄이면 실행되는 간단한 일이 GUI에서 수많은 클릭질로 해결해야 되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나는 공간지각력과 언어능력으로 빗대어 차이를 설명해보겠다. 건물 안 어느 방에 어떤 서랍 몇 번째 물건이 있는가 찾는 것이 수월한가, 불어를 배워서 '화장실이 어디인가요'하고 묻는 것이 수월한가. 둘 다 어렵지만 (컴퓨터는 원래 어려움) 보다 쉽다고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단지 개인의 성향이라고 본다. 성향의 차이라고 보지만, 윈도우에 익숙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공간지각능력이 보다 낫지 아니한가 싶다.

4. 한국인이 리눅스를 안 쓰는 진짜 이유

공짜라는 것이 단점 ㅡ

사실 한국인은 리눅스가 공짜여서 안 쓴다. 한국인은 공짜에 기여하는 것에 너무도 인색하다. 리눅스는 (운영체제를 포함) 대부분의 소프트웨어가 GNU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는  GPL(GNU General Public License)을 쓴다. GPL에 기반한 소스코드를 조금이라도 가져다 쓰면 그 프로그램도 무료로 배포해야한다. 한국인은 자신의 노고를 무료로 만들 여력따윈 없다고 보는 것이 속 편하다. 당장 눈앞의 작은 이익을 취해야 하루 먹고 살며 격무에 시달리는 한국 프로그래머에게 무료로 사회적 공익에 기여하는 일은 왠만한 동기부여가 없다면 힘들다. (가슴 큰 여자친구가 만들라던가, 안 만들면 게임 못한다던가 하는 일이 없다면 힘들다.) 또한 한국은 사회전체에 분노의 총합이 상당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쓰는 사람들(사용자)은 언제든 프로그래머에게 화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연약한 프로그래머와 흥분한 사용자의 대화는 이 보람도 없는 일 집어치우기로 결론짓기 마련이다.

컴퓨터를 공부해가면서까지 쓰는 천박한 것이라서 ㅡ

컴퓨터공학은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점에서 문과적 요소와 기계를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이과적 요소 그리고 사용자가 있다는 측면에서 경제적 요소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전문직 치곤 대접을 못 받는다. 으레 보수가 커야 귀한 직종이라는 귀천의식이 존재하는 한, 재미에 기반한 컴퓨터 산업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천한 것일 뿐이다. 치료 안 하면 죽는 의사나, 괜히 높아보이는 정치인이나, 갈 때까지 갔을 때 꼭 필요한 법조인에 비하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기에 그런가보다.

공유의 과실은 달지만 농사짓기는 싫어서 ㅡ

공유가 리눅스 사용의 정점이다. 사용해본 프로그램이 버그가 있다면 리보팅(reporting)해서 취합에 도움을 주고, 필요한 기능을 추천하고, 바이너리를 조작해본 결과를 나누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해보는 등 공유는 컴퓨터 사용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공유를 해야 활성화와 도태를 통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할 텐데 그럴 사람이 없다. 처음부터 완벽한 프로그램은 없는 것이 당연한데, 단지 싼게 비지떡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완벽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아예 사용을 안 하려 든다. 결국엔 사람이 문제이다.

5. 잉여로운 사람으로서의 변명 (부제: 그럼에도 불구, 리눅스를 써야하는 이유)

OS로써 리눅스는 한글도 잘 안되고 일일이 챙겨줘야 하는 여기 저기 많이 부족한 불구이지만, 컴퓨터 본연의 기능을 하는 OS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듣고 싶으면 CD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고 싶다면 콘솔이, 동영상 감상은 TV가 있다. 컴퓨터가 이 모든 일을 해주지만 사실 컴퓨터 본연의 기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컴퓨터는 단순히 소모적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백 만원에 육박하는 하드웨어 값이 아깝다.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터는 군인과 연구자의 전유물이었고, 자신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구축하기 위해서 사용했다. 컴퓨터는 사용자가 필요한 프로그램을 구축해서 사용할 때 가장 목적에 맞게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디봅스(DevOps, Developement and Operation 개발운용자)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러기엔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을 시인한다. 적어도 컴퓨터 사용자가 개발을 돕은 사회적 분위기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적 여유를 지닌 어른들만의 거대한 가상 놀이터를 구축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관심종자도 되어 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소스코드 조차 사용자가 알지 못 하는 윈도우론 답이 없다. 리눅스만이 산발적인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개발을 도울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기계에 의한 인류멸종을 두려워한다. 기계를 (특히 컴퓨터를) 기능적 측면으로만 바라보아서 나타나는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기능 이면에 개발을 살펴본다면 사실 컴퓨터는 인간에 비하면 시시하다. 적어도 프로그래머는 기능에 따른 매카니즘을 전부 이해하고 있다. 컴퓨터는 인간에 몸 보다야 명확한 구석이 많다. 컴퓨터를 소모적 기능에만 집중하여 아무도 새로운 놀이터 개발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 과거의 패키지를 복붙하여 사용하는데만 급급할 때, 컴퓨터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고 컴퓨터가 즉자적 존재에 이를 때, 그 날 정말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