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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위주 끄적거림/초단편 소설

(꿈,상상소설)한입만

이제 합숙도 막바지에 들어갔다. 합숙소로 사용하는 교실에 부자놈이 들어오더니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강단에 올랐다. 나는 그런 부티나는 옷을 입고 강단에 오르는 것에 못 마땅했지만 합숙의 목적이 그러하니 참아보기로한다. 아니 오히려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때 느닷없이 내 앞의 앞의 책상. 그러니까 제일 앞에서 두번째 줄에 있던 싸이코가 내 뒷자리에 있는 놈에게 번뜩 일어나 걸어왔다. "한입만. 응? 한입만" 어안이 벙벙해져 뭘 달라는 건지 궁금해해야 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잠깐이라면 잠깐인 시간동안 (무지 길게 느껴졌지만) 멍하니 바라보았던 것 같다. 다른 놈들도 그랬나보다. "한입만. 제발 한입만 내게 줘. 그거 내가 정말 좋아하는거란 말이야. 응? 제발." 싸이코는 애걸하는 어투와는 다르게 뒷자리 그 놈에게서 음료수캔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곧장 입으로 갖다 대었다. 물론 강단에 서있는 부자놈은 이 모든 상황을 줄곧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도 이 상황이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나보다. 나는 내 의지완 상관없이 (마치 의사가 신경반응검사를 위해 내리친 무릎이 튀어오르듯 자연스럽게) 손짓으로 그 사이코를 가볍게 제제하고있었다. 나도 모르게 강단에 서있는 놈 눈치를 보았던게 분명했다. 하지만 난 그가 못마땅했기에 굳이 일어나서 말리는 것 까진 차마 하지 않았다. 싸이코는 내 손짓에도 전혀 아랑곳하지않고 (나 따위 말을 듣겠냐마는) 음료수캔을 털어넣으며 천천히 무지 실망한채로 자리에 돌아갔다. "한방울도 없잖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데 한방울도 남지 않았어." 싸이코가 자리로 돌아가서 완전히 앉았음에도 한동안은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그러자 강단에 부자놈이 엉거주춤 바지주머니에서 오백원짜리를 꺼내 어색한 손짓으로 싸이코 머리 위에다가 대고 흔들었다. "여기. 이거 가져가." 싸이코를 비롯한 교실의 합숙생들은 부자놈이 들고있던 오백원짜리가 너무도 의외의 물건이기에 선뜻 반응하지 못했다. "여기..." 다시한번 어색한 손짓과 말투가 이어지고 나서야 사이코는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표정과 함께 오백원을 받아들었다. 고맙다는 말은 없었다. 상황이 돌아가는 눈치로 보아 그 오백원은 음료수값이여야 하는데, 요즘 왠만한 음료수는 오백원으로 못 산다. 순간 머릿속에서 "부자들은 음료수도 안 사먹나? 아니면 박스씩 쌓아놓고 먹어서 도매가만 아는건가?" 하는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으나, 이내 '내 알바 무어냐' 또는 '내 알 턱이있나'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모르는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합숙생들 주고 남은 것인지 교탁 위에는 사이코가 그토록 원했던 음료수가 대여섯개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교단이 살짝 높기도 하거니와 교탁이 음푹 들어가기도 하여 갯수는 알지 못 하였지만, 교단 위에 부자놈이 주섬주섬 음료수를 끌어 안아들고 나갈 때 그 것이 남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렇게 많이 남았으면 그 중 하나를 주면 되는 것인데, 굳이 왜.... 그렇게 부자놈은 교실을 나가 복도를 가로질러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후 우리는 별다른 동요 없이 이 이유없는 합숙을 계속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