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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위주 끄적거림/초단편 소설

(꿈)이탈리아 여행을 대신 가게되었다

<요약>

  • 이탈리아 여행을 친구 대신 가게 되었다.
  • 도착해서 무조건 체류가능한가 확인을 현지인에게 받아야한다.
  • 대부분 편하게 슈퍼에서 받는다.
  • 친절한 슈퍼를 찾는다. 확인을 받는다.
  • 슈퍼에서 두 여자로 구성된 일행(?)을 만난다. 나의 간접적인 도움을 받는다.
  • 그들 중의 (보다 매력적인)1명은 도둑이었다. 친분을 가장하여 자구 주머니를 뒤진다. 
  • 확인서 발급에 현지돈이 필요한데, 나는 파운드만 바꿔온 기억이 났다. 도둑이지만 현지돈을 빌리기위해 아쉬운 소릴 해본다.
  • 돈을 매개로 함께 여행하기로 한다.


<자세히>

  룸메이트가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해온 것은 오래되었다. 나는 여행을 (특히 장거리 여행을) 즐기지 않는 터라, 나에게도 제안해왔지만 거절하였다. 물론 자기는 외국어를 못 한다느니, 함께 동행했던 저번 해외여행은 꽤 훌륭했었다느니 하며 나를 유혹했지만 소용없었다 . 결국은 포기하고 혼자 갈 생각인가보다. 

  가족이 말썽을 부려 6개월 전부터 예약했던 비행기 티켓을 쓰지 못하게 되었단다. 내가 다 안타까웠다. 6개월 전에 거의 반값으로 나왔다고 자랑자랑했던건데 아쉽다. 

  "너라도 갈래? 어차피 못 쓰는건데. 이날 아니면 이 가격 못 구하는거 알지?"

  나야 늘 노는데 이탈리아 뭐 별거냐 하는 생각으로 공짜 티켓을 받아들었다. 

  결국 못 가게 되어버린 이탈리아가 너무 아쉬웠던 모양인지 아까부터 계속 여행에서 필요한 일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중략) 나는 '시네마 천국'이고 뭐고 별 관심이 없으니 대충 흘려들었다.

  여행 당일이 이렇게 바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월초이자 년초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일이 너무 밀려들어와서 여행을 포기해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밤을 새서 원고를 탈고하고 될대로 되라 식으로 회사에 밀어넣었다. 수정이야 여행가서 해도 되니까. 친구가 손에 쥐어준 빡빡한 여행일정은 애초에 포기할 생각이었다. 새벽3시에 일을 마치고 비행기는 아침 7시이다. 설레어서 잠도 잘 못 잤다.

  이탈리아는 먼 곳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내에서 다들 걱정하는 소릴 해댄다. 밀린 잠을 자다가 그 소리에 깼다. 살짝 엿들어보니 이탈리아 도착하면 현지인에게 체류확인을 받아야한단다. 지인없이 하는 여행도 예외가 아니라는데 그럴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슈퍼가 체류확인을 받아 준단다. 거의 모두 걱정하고 있다만 나야 이탈리어는 못해도 외국어를 좀 하니 걱정없다. 

  어쩐지 비행기 티켓이 싸더라니. 내려준 곳은 규모가 작은 공항이다. 김해공항 쯤 되어 보인다. 공항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조금만 벗어나니 라즈베리농장 투성이다. 시골마을이라 운치가 있다. 널따란 오르막을 따라서 양쪽에 빨간빛이 성성하다. 이래서는 슈퍼찾기도 힘들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체류확인 받아준다는 슈퍼는 많았다. 사실 너무 많았다. 간판에 체류확인 받아준다는 광고를 써붙인 곳이 많아서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았다. 대충 받아가면 괜히 이탈리아 정부에 밉보이는건 아닌가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중략) 나는 수산시장에서 배운 대로 호객행위가 없는 곳으로 가보기로했다. 

  내가 고른 슈퍼는 20평 남짓 다로 규모가 있지만 너무 상업적이지 않을 곳으로 골랐다. 남자 사장 혼자서 캐노피 아래 선배드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행색이 여행객인 나를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중년이지만 배가 나오지도 않은 것이 다소 매력적이라 이 슈퍼로 고르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가려니 두 여자가 따라 들어왔다. 그들도 한국인 여행객인듯 한데 체류증이 아니라 물건을 사러왔나보다. 나는 힐끔 보고는 무심히 슈퍼아저씨께 직진하였다. 

  "알로"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알로'로 화답하였다. '알로'는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페인어였나보다. 이내 '봉쥬르'를 말꼬리에 붙이고는 불어로 날씨를 묻는다. 자기는 날이 좋아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더란다. 바로, "이탈리아 여행은 처음이냐", "왜 이탈리아로 여행오게 되었냐", "여기에서 어딜 돌아볼거냐"하고 물음을 이거간다. 한 두번 여행객에게 체류확인서를 발급해낸 솜씨가 아니었다. 여기에선 다들 이렇게 하는가보다. 공무원 일꺼리를 외주 준 것처럼 느껴졌다. 

  슈퍼 주인이랑 이야기하는 와중에 계속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오라~ 너희들도 체류증이 목적이었구나. 나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걸 모범삼아 더욱 과장하게 되었다. 학창시절부터 우쭐대는걸 좋아했었다. 타국에서 잘난척하는건 제법 기분이 좋다. 당연히 체류증 발급에는 문제가 없었다. 여행온 목적도 분명하고 거기다가 외국어도 잘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슈퍼 안에 물건을 좀 둘러보고 함께 계산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러란다.

  두 여자가 나에게 다가와서 당연한듯 말을 건다. 

  그 중에 보다 반반한 여자가, "한국인이시죠? 저희도 좀 도와주시겠어요?"한다. 부탁하는 사람치고는 말투가 좀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반반하고 젊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그러기에 싫지 않았다.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곁에서 지켜보며 참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다가와서 말 걸어주니 고마울따름이었다. 한 명은 한예슬이랑 조보아를 교묘하게 섞어 놓은 얼굴인데 말을 잘해서 수작부려 볼 생각이다.

  유럽 여행이 처음이고 친구가 (생긴 것과 다르게)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난감하단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무턱대로 멀리와버렸다고도 하기도 했다. 그 밖에 도움을 얻어볼 구실을 많이 늘어놓았긴 하지만 잘 안 들린다. 예쁜 여자 얼굴과 상대적으로 덜한 여자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면서도 한쪽에 티나지않게 비중을 많이 두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어서 귀가 잘 안 들리게 된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첫인상과는 다르게 말투가 다정하게 느껴진다. 반반한 외모가 선입견을 깨부수는데 거들었다. 

  널찍한 슈퍼 캐노피 아래 유럽의 풍광을 얼굴로 받으며 20분 가량 떠들다보니 그들과도 친분이 생긴 모양이다. 말을 끊는답시고 손을 잡아 내리기도 하고 상대를 가리키기위해 어깨를 건들기도 하는 식으로 스킨쉽이 늘었다. 그래선지 함께 여행을 하면 좋겠단다. 그 쪽에선 호구잡겠다는 생각인지는 몰라도 나는 내심 기뻤다. 여행에 기쁨이란 우연히 찾아오는 이성과의 썸이잖은가. 그 사이 이제는 손깍지도 끼우고 곁에도 바추서는 사이가 되었다. 너무 급진전인데.

  대화를 하는 도중에 물건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슈퍼는 겉보기완 다르게 꽤나 좋아서 둘러볼꺼리가 많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뒷주머니에서 손바닥이 느껴졌다. 빈약한 엉덩이가 섹시하단 구실을 대었지만 기분 좋지 않았다. 소매치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요즘같은 세상에 낮선 남자에게 괜히 살갑지않겠지. 뭐하는 거냐며 경고를 주었다. 생각외로 화들짝 놀란다. 장난인데 뭘 그러냐며 수습하고 있지만 뭔가 뜻밖이라는 표정이다. 다시 관계회복을 위한 잡담이 몇 번 있다가 다시 오른쪽 주머니에 기척이 느껴졌다. 이제는 화를 낼 차례이다. 

  "뭐 하시는 거예요! 그냥 혼자 다니겠어요!" 라고 으름장을 놓고 돌아섰다. 그들도 아쉬울거 없는지 잡는척만 하다가 멀뚱히 서있고들 앉아있다. 그래도 슈퍼를 빠져나오려다가, 아뿔싸, 환전하는걸 잊었다. 이탈리아는 별 관심이 없어서 영국에서 쓸 파운드만 잔뜩 들고 와버렸다니. 체류증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여기에서 며칠은 더 있어야 하는데. 

  "영국 돈 안 필요하세요? 체류증 발급받을 돈이 부족하네요." 금세 돌아가서는 이쪽에서 되려 아쉬운 소릴 해본다. 

  "이제는 저희가 필요하신가 보네요." 하고 빈정거리는 소릴 들어야 했지만 맞는말이었다. 빌려주는 대신 여행 코스를 공유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한국 돈으로 몇 천원 안되는 돈을 빌려주면서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받아들였다. 그들은 체류증 비용을 대신 계산해주고 앞서 나갔다. 

  가게를 나서니 정면에는 빨간색고 파란 밭이 펼쳐저 있었다. 이 모습을 친구가 못보게 되어 너무 아쉬웠다. 분명 그는 보자마자 감탄을 연발 하였을 터였다. 더군다나 나는 예비 소매치기와 함께 여행을 해야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