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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위주 끄적거림/주장하는 글

작가를 작품으로 판단하기

- 오다 에이치로

원피스 속 욱일승천기

      일단 원피스 작가인 오다 에이치로 해명글이다.

https://namu.wiki/w/%EC%98%A4%EB%8B%A4%20%EC%97%90%EC%9D%B4%EC%B9%98%EB%A1%9C

요약하자면, 모르고 한 행동이다 이외엔 어떠한 언급이 없다. 자신이 군국주의자라는 의혹이 귀에 들어왔다면 작가는 으레 신경이 쓰이기 마련인데, 정말 모르고 한 행동일까? 적어도 신경쓰이는 사항에 무심한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면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일지도 모르겠다. 에이스 등뒤에 하겐크로이츠를 떠올리게하는 문양은 즉시 다음 인쇄본에서 수정하는 반면 욱일승천기를 떠올리게 하는 문양은 잔존시켰다. 어떤 행동을 하는 것 만큼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선택이라고 보았을 때, 오다 에이치로의 행동은 적절했는가. 오다 에이치로가 하겐크로이츠에 비해 욱일승천기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판단을 작품만으로 인식가능한가.

- 마릴린 맨슨

   

http://www.82cook.com/entiz/read.php?num=1755591

마릴린 맨슨이라는 공포를 일으키는 고스 분장으로 유명한 락가수가 있다. 그는 대부분의 공연을 미성연자관람불가로 기획한다. 미성년자관람불가인 이유는 적나라한 섹스아이콘 퍼포먼스가 그 이유이다. 그의 메이크업과 공연기획이 섹스중독 정도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 반면,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Bowling in for Columbine'에서 마릴린 맨슨은 "1999년 콜롬비아 대학 총기난사사건의 배후는 대중가요나 비디오 게임이 아니라 보다 선정적인 군비지출에 있다"고 꼬집는다. 이 개념 발언이 자유로운 퍼포먼스를 압박하지 말라는 면피성 답변인가, 아니면 미치지 않고 살 수 없는 잔혹한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일탈적 공연을 기획하는 것인가.

- 이안 왓킨스(Ian Watkins)

로스트프로핏(Lostprophets)은 'rooftops'라는 노래로 락 얼티밋 장르에서 파란을 불러온 실력파 그룹이다. 이 밴드에서 이안 왓킨스는 밴드를 만든 장본인이자 리더였다. 특히 이 밴드의 타이틀 대부분이 청소년에게 힘을 주는 가사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rooftops'라는 노래가사에 영향을 받아 왕따의 고통을 이겨내고 더이상 자살계획을 하지 않는다는 청소년 일화도 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이안 왓킨스는 1세 여아에 대한 강간을 포함 수십개의 강간 또는 강간미수 혐의로 29년 징역 복역중이다. 판사는 이안 왓킨스를 타락의 극단으로 보고 "일반인들, 특히 일반 여성에게서 격리되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가진 사람도 드물 것이다. 생전에도 무수한 가쉽이 있었고, 심지어 사후에도 끈임없이 루머가 생산되고 있다. 로리타컴플렉스(아동성애자)가 있다느니, 도벽이 있다느니, 마약중독자느니. 반면, 노래는 'You're not alone', 'Black or White' 등등 차별을 혁파하고 용기를 주는 가사 일색이다.

- 아이유

아이유 본인이 만든 노래도 아니고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것도 아닌 아이유가 욕을 많이 먹는다. (나무위키'아이유' 참조) 키잡(키워서 잡아먹는다)이든 소녀성장기이든 아직 사회가 받아들이기에 파격적인 노래가사와 뮤직비디오인 것은 사실이다. 아이유의 내적 자아 중 이런 파격적 성취향이 존재하기는 할까? 비난(있다면)은 누가 받아야하는가?

-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여기저기 저 하늘 끝까지 초록이 지쳐 단풍든다.' 시라면 시, 수필이면 수필, 노랫말이면 노랫말 어느하나 주옥 같지 않은 글이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지만 서정주는 친일독려 연설문도 기가막히게 썼다는 것이 문제이다. 수십만의 한국인이 서정주의 연설을 찰떡같이 믿고 사지로 내던져져 옥석처럼 부숴졌다.

예술가를 예술 작품으로 평가 할 수 있는가?

- 예술가의 무지

예술가는 인간이기에 모르는 것이 많다. 정확히는 모든 것을 알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에너지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예술가는 선택을 해야한다. 역사, 철학, 문화, SNS 가쉽, 급진적 성취향, 직장 위계관계, 정치. 무엇보다도 자신의 작품에 관련된 무엇. 글을 읽는 당신이라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했다면 매번 꼭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나는 작품을 남기는 모든 예술가를 작품 외엔 관심이 전혀 없는 자패증세를 앓고 있거나 백치로 보기로 했다. 이렇게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게 대충 후려쳐야 답이 나온다. 그렇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

- 예술가와 작품 간의 간극

예술은 흔히 목적을 분명하게 노출하지 않는다. 관찰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의 삶에 기반한 감흥을 도출하려는 의도이다. 예술가가 작품을 완성하고 타자에게 노출시키는 순간 작품은 자신이 창조자와 격리되어 홀로 존재한다. 그 어떤 예술작품도 예술가의 인생을 통으로 담을 수 없으며 오직 생각의 일부분을 나타낼 뿐이다. 어쩌면 과장 또는 축소, 왜곡 같은 타자의 기호에 따라 예술가 본연의 극소한 생각이라도 찾을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 천사 작가 vs 악마 작가

작품이 홀로 존재하듯, 작가 역시 홀로 존재한다. 작가는 선 또는 악 둘 중 하나로 설명될 수 없고, 오직 이 둘이 적절하게 섞여 기능한다. 배면도든 측면도든 투시도든 부분도이든 어느 것 하나 예술가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은 없다. 타자(혹은 관찰자)가 그 중 하나를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일 뿐이다. 관찰자 입장에서 자신이 받아든 도면이 관찰자 자신과 닮았다면 천사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악마 딱지를 붙인다. 이처럼 편한 것은 사실 없고 더이상의 노력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 작가가 중요한가 작품이 중요한가

작품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작가 내지는 예술가 본인의 이름이 중요한 사람은 본인이다. 연예인 고민이 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다고 하지 않던가. 팬들은 작품에 가장 연연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걔 중에는 작품 외에 작가를 감상해야겠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굳이 그러고 싶다면 그래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배울 것은 그리 많이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으레 작품에 비해 예술가는 단지 시시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에술가의 인성이 곧 예술 작품의 인성인가?

롤랑 바르트의 '상호 텍스트'이론을 폈던 최초의 논문 ‘저자의 죽음’에서 이 글과 비슷한 주장을 본 적이 있다. 여기서 롤랑 바르트의 골자는 저자가 텍스트의 기원이라는 설을 부인라는 것이다. 작품은 항상 타자의 생각이나 작품 이전에 존재한 유형의 또다른 텍스트를 반영한 것이고, 때로는 부스러기(다른 텍스트에서 떨어져 나온 무언가), 변종, 표절 등을 통해 존재하는 것이지, 더 이상 작가의 독창적이고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는 순수창작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멋있는 암호를 쏟아내는 존재이지 그 암호를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상 '원피스'는 계속 보고 싶은데 일본놈에게 괜히 정이가지 않는 모순덩어리 관찰자의 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