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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위주 끄적거림/주장하는 글

민주화운동 참여한 㖈 = 민주주의자 (?)

우선 참고할만한 링크 소환

http://impeter.tistory.com/1177 ㅡ 아이엠피터 블로그 '노무현배신자 김민석이 과연 배신자인가?'


  서울의 봄 이후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였다. 의로운(?) 자들 내지는 지식인(?)들은 민주화 운동에 적극 가담 하였고, 그 중에는 리더자리를 꽤찬 사람도 자연스레 등장하게 되었다. 김대중 시대를 터닝포인트로 하여 민주화 운동의 리더들은 하나둘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현재 거대 정치정당에서 의석수를 다수 차지하고 있다. 

  그알싫 '지방선거데이터센트럴' 오버뷰를 듣다가 김민석 전국회의원이 '민주당'(놀랍게도 '더민주'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이라는 당을 창당하여 13개의 국회의원 예비후보를 등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려왔다. 김민석은 노무현이 대선후보 시절 여론조사를 맹신하여 상대후보인 정몽준 밑으로 기어들어간 분으로 기억한다. 하... '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아직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니...

  순간 예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왜 그들은 정계에 진출하는 순간 변절하는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부정적 수사로 떠올랐지만, 성선설을 믿는 나에겐 아무래도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또한 반례가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알싫'에 유MC의 말을 인용해보면 "투표권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 꼭 민주주의자는 아니다." 대의가 꼭 행동에 적확한 목적이 아닐 수 있다. 부분의 합이 전체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감행한다거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운 고통을 인내하는 것 정도 말이다. 커다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작은 부분들은 때로는 아이러니 일 수도 있겠다. 

  절대로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행동이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았다는 것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투표권을 얻으려는 노력을 하는 모든 사람 = 민주주의자' 라는 것에 강한 회의감이 들었다. 인류가 늘 그렇듯, 성급한 일반화는 지역연고제에서와 아주 꼭 같은 이유로 민주주의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사전적 의미대로 '모든 국민이 주인되는 세상 바라기'이다. 권력분배에 있어 누구하나 배재시키지 않고 평등하게 주어진다는 의미에서 반댓말은 엘리트주의가 될 것이다. 엘리트주의는 권력을 소수에게 쥐어주는 것이다. 

  권력에서 배재된 엘리트주의자에게도 국민에게 투표권은 필요하다. 권력을 나누어 주려는 측은지심보다는 순수하게 권력욕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국회의원이 되고서야 비로소 그 본색이 들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쉬워진다. 

  이런 엘리트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들에게도 태생의 모순이 존재한다. 투표권이 주어진 국민들은 이미 국회의원이 된 자신들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참으로 복잡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투표는 하되 무식하게 만들어야 한다니... 어떡하면 딱 투표소까지만 걸어갈 수 있는 공간지각력만 국민들에게 부여할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는 진실이 들어날 것이다. 본심을 숨기려 고군분투해봤자, 무색하게도 기회주의자들의 본심은 들어날 것이다. 세월호처럼 말이다. 유일한 해법은 이제라도 권력을 내려놓고 인생의 위안길로 들어가 가공된 자아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살아가는 수가 최선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해가는 추악한 외모에 걸맞는 평판과 응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