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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커피

커피공부를 시작한 이유

  커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내 인생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학창시절 남들과 똑같이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고, 또한 그것 말곤 할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연애도 했고 음악도 들었고 게임도 했고 책도 읽었지만 다들 내가 하고 싶다고 할순 없었다. 오직 학교 교과목 공부만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행동이었다. 나머지는 도무지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다른 외국어영역 70분 보단 언어영역 90분이 나에게 특별히 힘들었다. 덕분에 안구건조증이 와서 시력이 0.5로 떨어졌지만 (지금은 1.5) 언어영역은 마지막까지 나아지진 않았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정확하게 대치하고 있었고 둘다하기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진정한 나의 인생을 수능시험일 이후로 미루기를 반복하였다. 

  수능날 의외로 떨리지 않았고 그다지 기쁘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능을 치르고 나서 밀려왔던 말 못할 해방감이 내 어깨를 아직 짖누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유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커피는 없어도 살 수 있다. 5대영양소는 아주 극소량의 지방정도가 고작이며 비타민 무기질도 그리 많지 않다. 커피는 위장장애를 가져올 수는 있어도 포만감을 주지는 못 한다. 커피가 주는 영향이란 카페인에 의한 각성효과 정도. 실증주의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인간 이외에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커피와 음악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만큼 커피는 잉여롭기에 나에게 커피는 여유를 상징하는 것이되었다.

 아! 맞다. 대학교 중간기말 내내 나는 깨어있기 위한 도구로 커피를 마셨구나. 시험기간에 마셨던 커피는 커피로 치지 않기로 하겠다.

  꼭 필요한 사람으로 살기를 거부한 순간(수능시험 치르고 직후)부터 즉자적 삶이 내 life pattern에 대한 변명이 되어 주었고 샤르트르가 내 변호인이 되었다. 내 삶과 어울리는 커피를 찾게된 것도 필연적이었다.

  대학교 3학년 기말시험 일정중에 마지막 시험을 빼먹었다. 고의는 없었지만 충분히 꼼꼼했더라면 까먹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내 생에 처음 시험을 빼먹고 늦잠을 잤던 기록적인 날이었다. 자책감이 밀려오다가 이내 맑은 정신이 되었다. 아마도 잠을 푹자고 일어나서 그랬나보다. 교수님에게 솔찍하게 말하고 재시험을 혼자 보기로 했고, 교수님은 패널티가 있겠지만 시험은 보게 해주겠다고 편의를 봐주셨다. 한가해진 나는 유독 작고 자신감 넘치는 카페로 들어가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 제일 맛있는 커피를 달라고 말하였다. 진부한 말을 하게되어 유감이지만,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상들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말하자면 프루스트가 홍차를 마셨듯이 나는 커피를 마시고서 인생의 장면들을 세세하게 반추하게 되었다. 

  커피가 주는 여유로움에 중독되었다. 다시는 바쁘게 살고 싶지 않았다. 커피의 각성효과 때문이었다고 하고 싶다. 나를 각성시켜준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고 좋아하면 으례 잘 알고 싶어지기에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여유로운 커피 덕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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